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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GONGJU CITY

2021년

2021.09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곤 지

  • 9월의 역사인물 곤지(昆支, ? ~ 477)는 백제 중흥을 이룬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이자 왜(倭)에 파견되어 백제계 이주민들을 규합하고 왜와의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백제 중흥의 초석을 닦은 인물입니다..
  • 곤지는 백제의 왕족으로 성씨는 부여(夫餘)이며 아버지는 비유왕, 형은 개로왕, 동생은 문주왕이며, 백제의 중흥을 이룬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입니다.
  • 461년(개로왕 7) 곤지는 왜와 협력하여 고구려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개로왕의 계획에 따라 왜로 파견되어 가와치(河內)의 아스카(飛鳥)에 정착하게 됩니다.
  • 곤지가 왜에서 체류하는 동안 백제는,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당하고 개로왕이 피살되는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곤지는 문주왕의 부름을 받고 웅진으로 귀국하여 477년(문주왕 3) 내신좌평에 임명되었습니다.
  • 이는 개로왕에 이어 즉위한 문주왕이 국내외에 정치·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곤지를 통해 불안정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로 생각됩니다.
  • 내신좌평에 임명된 곤지는 자신의 정치력을 바탕으로 웅진백제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귀국한 지 3달 만에 왕권을 위협하던 병관좌평(兵官佐平) 해구(解仇)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 비록 귀국한 지 3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곤지가 국내외에서 쌓은 정치·경제적 기반은 삼근왕에 이어 두 아들인 동성왕과 무령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습니다.
  • 동성왕과 무령왕은 곤지가 그랬던 것처럼 웅진백제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 백제의 중흥을 대내외에 천명한 521년(무령왕 21) 무령왕의‘누파구려 갱위강국’선포로 이어졌습니다.
  • 곤지가 정착했던 일본 아스카에는 아스카베(飛鳥戶神社)신사가 있는데, 이 신사는 곤지를 비조대신(飛鳥大神, 아스카의 큰 신)으로 부르며 마을의 수호신이자 조상신으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준높은 백제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곤지와 후손들의 외교적 활동이 당시 왜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 공주시는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이자 웅진백제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국내외에 정치·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여 백제 중흥의 초석을 닦은 곤지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1년 9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카드뉴스

2021 9월 곤지1 -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2021 9월 곤지2 2021 9월 곤지3 2021 9월 곤지4 2021 9월 곤지5 2021 9월 곤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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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 주시 9월 역사 인물에 ‘곤지’
  •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이자 백제 중흥의 초석을 닦은 곤지를 9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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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시 9월의 역사 인물 ‘곤지’ 선정
  • 무령왕의 아버지... 백제 중흥의 초석 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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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월의 공주 역사인물 포스터 이미지로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고해주세요
2021年 9월의 공주 역사인물

공주시 로고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미상~477)

곤지는 백제의 왕족으로 아버지는 비유왕, 형은 개로왕, 동생은 문주왕이며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이다.

곤지는 왜와 협력하여 고구려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461년 왜에 파견되어 백제계 이주민들을 규합하고 왜와의 협력체계를 구축하였다.

웅진천도 이후,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477년 귀국한 곤지는 내신좌평에 임명되었으나, 왕권을 위협하던 병관좌평 해구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남긴 정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즉위한 두 아들 동성왕과 무령왕은 위기를 극복하여 찬란한 백제의 즉흥을 이루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