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전의이씨 삼위 효열 정려는 1729년(영조 5)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와 1736년(영조 12)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의 처 열녀 청송심씨, 그리고 1724년(영조 1)에 명정을 받은 이진성의 효행과 절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정려는 원래 부여 은산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했던 이연회의 8대손 이석호(李錫澔)가 일본인에게 쫓겨 현재 전의이씨의 집성촌인 사곡면 대중리로 피신하게 되면서 명정 현판도 함께 옮겨왔다. 이후 이동찬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힘을 모아 1997년 정려를 지금의 위치에 새로 세웠다.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원형의 초석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앞면과 양쪽 좌·우는 홍살 처리가 되어 있고, 뒷면은 벽으로 되어 있다. 정려의 정면 위에는 ‘효열정려(孝烈旌閭)’라고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정려 내 뒷면에는 ‘효자조산대부행사복시주부이연회지문영묘을해명정(孝子朝散大夫行司僕寺主簿李延會之門英廟乙亥命旌)’이라고 쓰인 효자 이연회의 명정 현판과 ‘절부조산대부행사복시주부이연회처영인청송심씨지문영묘병진명정열녀(節婦朝散大夫行司僕寺主簿李延會妻令人靑松沈氏之門英廟丙辰命旌)’라고 쓰인 열녀 청송심씨의 명정 현판이 있다. 또한 ‘효자장사랑헌릉참봉이진성지문경묘갑진명정(孝子將仕郞獻陵參奉李晉聖之門景廟甲辰命旌)’이라고 쓰인 효자 이진성의 명정 현판도 있다. 가운데에는 이연회의 9대손인 이호승(李虎承)의 효행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