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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GONGJU CITY

2019.06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나라를 위한 충정, 독립운동가 오강표

  • 공주시는 2019년 6월의 역사인물로 죽음으로 나라를 위한 충정을 보인 무이재(無貳齋) 오강표(吳剛杓, 1843~1910)를 선정하였습니다.
  • 오강표는 공주 사곡면 월가리 도덕골에서 태어나 스승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가르침을 따라 관직에 임명되었어도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던 중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분격해 을사오적을 토벌해야 한다는「청참조인제적소(請斬調印諸賊疏)」를 지었습니다.
  • 오강표는 이 글을 충청남도 관찰사 이도재(李道宰)에게 보내 임금께 상소하려 하였지만 이도재가 이를 거부하자 자결을 결심하고 공주향교 명륜당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등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였습니다.
  •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기유각서로 인해 사법권이 일제에 박탈당하고 1910년 ‘한일합방조약’강제 체결로 국토와 주권을 완전히 빼앗기는 상황이 전개되자, 오강표는 절명사(絶命詞)를 지어 망국의 울분을 통곡하고 죽기를 각오하였습니다.
  • 1910년 11월, 오강표는 “망국의 노예가 되어 따뜻하고 배부른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며 얇은 옷 한 벌을 걸치고 소매 속에 유서를 넣은 채 공주향교 명륜당으로 들어가 강학루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습니다.
  • 죽기 전에 남긴 절명사에는 “비록 살아서 조선 땅을 되찾는 것은 어렵다하나 일본사람이 되는 것을 어찌 볼 수 있는 일이겠느냐!” 라는 애국 충정의 마음이 쓰여 있습니다.
  • 독립장 사진과 비석 사진/정부에서는 1962년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카드뉴스

6월의 이달의 역사인물 독립운동가 오강표 카드뉴스 1- 하단에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6월의 이달의 역사인물 독립운동가 오강표 카드뉴스 2 6월의 이달의 역사인물 독립운동가 오강표 카드뉴스 3 6월의 이달의 역사인물 독립운동가 오강표 카드뉴스 4 6월의 이달의 역사인물 독립운동가 오강표 카드뉴스 5 6월의 이달의 역사인물 독립운동가 오강표 카드뉴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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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 공주시 6월 역사인물 오강표 선정
  • 독립운동가 오강표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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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시, 6월의 역사인물 독립운동가 오강표 선생 선정
  • 20일 김인겸 묘 현장답사 및 학술 세미나 등 다양하게 업적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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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월의 공주 역사인물 포스터 이미지로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고해주세요
2019 6월의 공주 역사인물 "흰머리에 붉은 충성은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공주의 인물

1843~1910 오강표 - 자는 명여(明汝),호는 무이재(無貳齋)로 공주 사곡면 월가리 도덕골에서 태어남.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상소문 「청참조인제적소(請斬調印諸賊疏)」를 지어 관찰사에게 보내 조정에 올리도록 하였지만, 관찰사가 거부하자 자결을 결심하고 은둔함. 1910년 ‘한일합방조약’체결로 국토와 주권을 완전히 빼앗기자 오강표는 절명사(絶命詞)를 지어 망국의 울분을 통곡하고 죽기를 각오함. 1910년 11월,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던 날, ‘망국의 노예가 되어 따듯하고 배부른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며 얇은 옷 한벌을 걸치고, 소매 속에 유서를 넣은채 공주향교 명륜당으로 들어가 강학루에 목을 매어 자결함. 오강표의 순절비는 충청남도지정문화재자료 제45호로 지정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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