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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계룡면(중장리)

계룡산(鷄龍山)[산]
지 명 계룡산(鷄龍山)[산]
내 용 [위치] 계룡면, 반포면과 논산시 두마면에 걸쳐 있는 명산.
[유래] 산 높이는 827m, 둘레가 2백 리가 되는데 산 모양이 닭의 볏같이 생겼으며 사방이 鷄湫가 있으므로 계룡산이라고 부른다. 신라 때는 五岳의 하나인 中岳이라 하여 中岳壇을 설치하여 춘추로 제사를 지내어 조선시대 말엽까지 이천 년을 전해 왔고 李太祖 李成桂도 이 산에 제사를 지내고 新都內에다 궁궐을 지으려고 공사를 시작하였다가 중지하고 산봉인 연천봉에 절을 지어 계룡산 鄭氏의 팔백년 王運을 누르기 위해 壓鄭寺(압정사)라 하였으며 동쪽에 동학사, 남쪽에 新都內, 서쪽에 신원사, 북쪽에 갑사의 큰 절을 비롯하여 수십 개의 암자가 곳곳에 있다. 계룡산 산맥은 한 줄기에서 역행하는 선을 그어 동학사의 文脈과 갑사의 武脈으로 한국적인 인맥을 구성하는 곳이고, 그 밖의 마곡사의 정맥을 통해서 뛰어난 인재를 包卵하는 영산으로 손꼽는다. 충청남도의 국립 공원 지대를 이루는 계룡산은 충청남도의 맥이며 표상이다.
괴목정(槐木亭)[마을]
지 명 괴목정(槐木亭)[마을]
내 용 [위치] 삼거리 남서쪽.
[유래] 느티나무가 있는데 옛날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조헌과 영규대사가 이곳에서 만나 앞으로 나라에 큰 국난이 닥쳐올 것을 예상하고 서로 우의를 존중해서 나라에 목숨을 바쳐야겠다고 확약을 한 그 장소라 한다.
군자대 (君子臺)[바위]
지 명 군자대 (君子臺)[바위]
내 용 [위치] 갑사 안쪽
[유래] 甲寺九曲(갑사구곡)의 하나인 五曲의 바위다. 길이가 16보, 넓이가 12보 되는 바위가 시내를 질러있고 그 아래가 10여 척이나 되는데 거기에[君子臺]란 글자가 크게 새겨져있다. 또한 그 측면에는[三甲洞主]라고 글씨를 작게 새기고 그 위측면에[靈地有臺君子名 名稱益口久傳聲 鷄鳴空谷何益 口化爲龍艮自成]의 절구와 그 뒷면에는[益口舊谷君子臺 鷄龍新面艮成莊]의 한구를 새기었으며 군자대 서쪽 큰 바위에는[艮成莊]이라고 3자가 새겨져 있다. 좌우 수목이 울창한 가운데 시냇물이 그 위로 흘러서 폭포를 이루고 그 아래에 못이 패어서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때의 불운의 장군 임경업 장군이 몸을 피했던 자리라 한다.
금학암(金鶴岩)[바위]
지 명 금학암(金鶴岩)[바위]
내 용 [위치] 공우탑 옆.
[유래] 바위에 금학암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金鶴이 이 바위에 앉기만하면 대장골이 큰 고을로 변한다 하는데 금학이 아직 앉아보지 못한 자리라 한다. 黃鳥도 金鶴이라 하는데 그 새가 앉기를 기다리는 바위라 해서 금학암이라 부른다.
농바위[바위]
지 명 농바위[바위]
내 용 [위치] 중장 2리, 삼거리 서남쪽.
[유래1] 바위가 농짝처럼 생겨 농바위라 부른다.
[유래2] 바위가 흔들거려 농바위라 부른다.
[전설] 농바위 옆에 한 부자가 살았다. 가을에 추수를 하며 두 말이라고 외치면 농바위에선 세 말이라고 소리가 났다고 한다. 실제로 세 말이 되어 재산이 배로 늘어났다고 전한다. 어느 날 한 지관이 와서 부자한테 농바위를 깨뜨리면 더 부자가 된다고 하여 이 말에 솔깃한 부자는 그 바위를 깨뜨렸다. 이에 바위에서 학이 날아가 버렸고 부자는 폭삭 망했다고 한다.
대장골(大檣골)[골]
지 명 대장골(大檣골)[골]
내 용 [위치] 중장리.
[유래] 갑사에 있는 짐대의 이름을 따서 대장골 또는 장대라 부르는데 골짜기에 마을이 여기 저기 산재되어 있다 해서 열두대장이라고도 부른다.
독신바위(獨身바위)[바위]
지 명 독신바위(獨身바위)[바위]
내 용 [위치] 선바위 위쪽.
[유래] 큰 바위와 외따로 떨어져서 고독하게 서 있다 해서 독신바위라 부르는 바위다.
되찬이[마을]
지 명 되찬이[마을]
내 용 [위치] 장잣골 오른편
[유래] 목숨을 되찾고 장수하는 마을이라 해서 도로 찾는다는 뜻에서 되찬이라 부른다 한다. 산수가 좋은 마을인데 특히 물이 좋아서 여기 사람들은 물을 장수물이라 자랑하는데, 산에서 흐르는 물로 식수를 하면 더욱 장수한다고 전한다. 송정과 유산을 합쳐 되찬이라 부른다.
들가운데[마을]
지 명 들가운데[마을]
내 용 [위치] 삼거리 건너.
[유래]
만학골[마을]
지 명 만학골[마을]
내 용 [위치] 갑산수 너머.
[유래] 학이 밤에 잠을 자러 들어온다고 하여 만학골이라고 부르며 다른 설로는 동네 막바지에 있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
미륵불(彌勒佛)[불상]
지 명 미륵불(彌勒佛)[불상]
내 용 [위치] 舜華林園 위쪽. 불상의 높이는 4척 5재가 되는데 큰 바위 사이에 서있는 불상이다.
[유래]
배살미골[마을]
지 명 배살미골[마을]
내 용 [위치] 갑산수 왼편
[유래] 예전에 이곳은 전부 물에 잠겨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곳에 배를 띄웠다고 하여 배살미라고 부른다. 여기에 전하는 얘기로 배에 대추를 싣고 가다 배가 뒤집혀 대추가 쏟아졌는데 이로 인해 대추가 많이 났다고 전한다.
배석대(拜石臺)[대]
지 명 배석대(拜石臺)[대]
내 용 [위치] 天眞寶塔(천진보탑) 아래.
[유래] 阿道和尙이 천진보탑을 발견하고 배례하던 臺(대)라 해서 배석대라 부른다.
복걸이[마을]
지 명 복걸이[마을]
내 용 [위치] 중장리.
[유래]
사자암(獅子庵)[사찰]
지 명 사자암(獅子庵)[사찰]
내 용 [위치] 갑사에서 동쪽으로 4㎞정도. 암자가 上, 中, 下로 나뉘어져 있다.
[유래]
삼거리(三巨里)[마을]
지 명 삼거리(三巨里)[마을]
내 용 [위치] 중장리에서 중심.
[유래] 세 갈래 길이 있는 곳에 마을이 있다 해서 삼거리라 부른다.
삼거리(三巨里)[마을]
지 명 삼거리(三巨里)[마을]
내 용 [위치] 만학골 가는 길.
[유래] 바위가 첩첩이 하늘을 향하여 선을 긋고 있는 바위라 해서 선바위라 부른다.
성재[고개]
지 명 성재[고개]
내 용 [위치] 봉동이 위쪽.
[유래] 예전에 이곳에 성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 곳은 동학군이 은거하던 곳인데 어느 나무꾼이 나무를 하던 중 잠이 들었는데 동학군 아귀(굶어죽은 귀신)가 나타나 배고픔을 호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솔아티[마을]
지 명 솔아티[마을]
내 용 [위치] 갑사 주차장 위편.
[유래] 예전에 이곳에는 도깨비가 불을 내어 태웠다고 전한다.
송정(松亭)[마을]
지 명 송정(松亭)[마을]
내 용 [위치] 되찬이 옆.
[유래] 소나무 정자가 있다 해서 송정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수렁들[마을]
지 명 수렁들[마을]
내 용 [위치] 중장리. 되찬이 앞.
[유래] 이곳에 수렁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정봉(水晶峰)[산]
지 명 수정봉(水晶峰)[산]
내 용 [위치] 갑사 동쪽.
[유래] 봉우리가 수정처럼 곱다 해서 수정봉이라고 부른다.
순화림원(舜華林園)[계곡]
지 명 순화림원(舜華林園)[계곡]
내 용 [위치] 원바위 위편.
[유래] 시냇가 큰 바위에 순화림원 넉 자를 크게 새겼으며, 그 아래에 龍華岩 사각 바위들이 있어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므로 갑사 구곡의 하나인 六曲으로 부른다.
신암(莘岩)[마을]
지 명 신암(莘岩)[마을]
내 용 [위치] 삼거리 북쪽.
[유래] 갑사산 아래에 선바위가 있는 부근의 마을인데 신선하게 하늘의 도움을 받는 바위 부근에 마을이 있다 해서 신암이라 부른다.
아도화상토굴(阿道和尙土窟)
지 명 아도화상토굴(阿道和尙土窟)
내 용 [위치] 천진보탑 아래.
[유래] 백제 때 갑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수도한 토굴이라 전한다.
오미, 오은이[마을]
지 명 오미, 오은이[마을]
내 용 [위치] 농바위 남서쪽.
[유래] 들 가운데 높이 95m 되는 산이 외따로 있는데 이곳 형국이 자라 모양이라 한다. 마을 부분은 자라의 꼬리부분으로 감싸고 있다 하여 오미라 부른다 한다. 오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문폭포(龍門瀑布)[폭포]
지 명 용문폭포(龍門瀑布)[폭포]
내 용 [위치] 미륵불 위쪽.
[유래] 계룡산 연천봉 북서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합하여 흘러서 이곳에서 폭포를 이루었는데 그 길이가 100길이나 되며 물이 떨어지는 광경이 장관이다.
용유소(龍遊沼)[못]
지 명 용유소(龍遊沼)[못]
내 용 [위치] 중장리 용추교 아래.
[유래] 위쪽으로 큰 바위가 둘이 있는데 그 아래에 못이 패어 있다. 여기에서 용이 놀았다 하여 용유소라 부르는데 龍遊沼 또는 艮成莊 등의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갑사구곡의 一曲이다.
원효암(元曉岩)[대]
지 명 원효암(元曉岩)[대]
내 용 [위치] 연천봉 서쪽.
[유래] 문짝만한 長石으로 만들어진 臺인데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이라 하여 원효암이라 부른다.
유산(柳山)[마을]
지 명 유산(柳山)[마을]
내 용 [위치] 오미 서남쪽.
[유래] 柳兵使의 묘가 있다 해서 柳山이라 부른다.
의상대(義湘臺)[대]
지 명 의상대(義湘臺)[대]
내 용 [위치] 원효대 아래.
[유래] 의상대사가 수도한 곳이라 하여 의상대라 부른다.
장잣골[마을]
지 명 장잣골[마을]
내 용 [위치] 갑골 옆.
[유래] 옛날에 長者가 살았다 해서 장잣골이라 부른다.
조중봉토굴(趙重峰土窟)[굴]
지 명 조중봉토굴(趙重峰土窟)[굴]
내 용 [위치] 연천봉 서남쪽.
[유래] 조중봉이 여기에서 수도를 하였다 해서 조중봉토굴이라 부른다.
짐대, 철당간[문화재]
지 명 짐대, 철당간[문화재]
내 용 [위치] 사리탑 앞 아래층.
[유래] 신라 문무왕 19년(679)에 의상대사가 세웠다 하는데 아래에 돌지주가 있고 그 사이에 쇠로 된 짐대가 서 있어서 높이가 28층이 되었다 한다. 고종 광무 3년(1899)에 위쪽으로 4층이 부러지고 지금은 24층이며 1956년에 수리하여 국보 256호로 지정된 짐대다. 철당간이라고도 부른다.
천진보탑(天眞寶塔)[탑]
지 명 천진보탑(天眞寶塔)[탑]
내 용 [위치] 수정봉 아래.
[유래] 천연적으로 탑이 되어 있는데 석가모니불이 입적한 400년 만에 중인도의 阿育王(아육왕)이 拘尸羅國(구시라국)에 있는 金利寶塔에서 부처의 사리 8괵(斛 4斗)을 발견하여 십방(十方) 世界에 분포할 때 飛沙門天王을 보내어 계룡산에 있는 이 천연 석탑 속에 봉안하여 두었는데 백제 구인왕 때 阿道和尙이 발견하여 천진보탑이라 하였다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갑사 본전에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서 1.3㎞ 지점에 신흥암이 있고 암자 바로 후면에 울창한 숲에 뾰죽한 峻峰을 이룬 절묘한 자연암석이 바로 天眞寶塔이다. 일설에 의하면 아도화상이 갑사를 창건할 때 천진보탑에서 발산하는 네 개의 빛이 반짝여서 그것을 보고 좌향을 잡아 절터로 잡고 절을 세웠다 한다. 갑사에서 천진보탑까지의 산길은 스님의 길이라 부른다.
청련암(靑蓮庵)[사찰]
지 명 청련암(靑蓮庵)[사찰]
내 용 [위치] 갑사 서쪽.
[유래] 영규대사가 수도를 한 암자이다.
표충사(表忠祠)[사당]
지 명 표충사(表忠祠)[사당]
내 용 [위치] 갑사 대웅전 서쪽.
[유래] 영종 14년(1738)에 姜時永이 창건하여 서산대사, 사명당, 영규대사의 화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는데 表忠祠로 賜願되어 나라에서 제수(祭需)를 바치다가 고종 31년(1894)에 폐지되고 지금은 중들이 향화를 올리는 사당이다.
흔덕농바위[바위]
지 명 흔덕농바위[바위]
내 용 [위치] 농바위에 있는 바위.
[유래] 큰 바위 위에 얹혀 있는데 한 사람이 흔들어도 흔들리고, 열 사람이 흔들어도 늘 그 정도로 흔들리는 바위이다.
圓바위[바위]
지 명 圓바위[바위]
내 용 [위치] 관음불 뒤편.
[유래] 바위에 원을 그리고 그 위에[X瑞圓] 석자를 새긴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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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9-01-0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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